Pilgrim Stories (믿음의 여정) 21

나의 역사 Vs 하나님의 역사

산길을 헤치면서 가다보면 산 중턱즈음, 탁트인 시야를 볼 수 있는 지점에 다다를 때가 있다. 숲 속 안을 걸어올 때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광경이 펼쳐지면서 시원한 공기가 가슴을 쓸고 지나가듯이 걸어온 길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그 풍경은 내가 걸어올 때에 보았던 산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삶의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눈을 열고 바라보면 나의 인생의 구비구비 엮여 있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내 삶을 주님의 빛으로 조명할 때에야 발견된다. 주님은 친히 하늘의 영광을 다 버리시고 자신을 완전히 비우셔서 우리의 삶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오셨다. 우리와 친히 동행하시면서 우리를 가장 아름다운 길로 인도하시기 위해 오늘도 일하신다. 그러나 우리의 눈이 그분을 보지 ..

영적탈피 / 순종의 기적

과거의 옷을 벗으며 아이들은 한 번 무언가에 꽂히면 한동안 그것에 몰입하곤한다. 우리집에도 막내가 어항꾸미기에 몰입하더니 한동안 방치 되었던 어항을 열심히 청소하고 꾸미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인터넷을 한참 뒤져서 야심차게 채리 새우들를 샀다. 막둥이는 이 새우를 누나와 함께 나누어서 두 어항에 넣어 각자 방에 놓고는 경쟁이라도 하듯이 열심으로 기르기 시작했다.그런데 어느날 둘째 딸이 징징대면서 방에서 나왔다. “튀김”(새우이름) 이가 죽었다는 것이다. 새우들은 성장하면서 탈피를 하는데 그 탈피의 과정을 지나다가 껍질을 벗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한 것이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주님과 함께 새로운 영적인 여정을 열어가면서 반드시 나의 과거의 삶을 정리해야 한다. 그것은 마치 갑각류의 동물이 탈피하..

관점의 차이

우리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 속에서 일어난 현상 너머 주님이 내 삶에 무엇을 하시고 계신지 보아야 한다. 아름다운 무늬를 가지고 있는 걸작품과 같은 타피스트리의 뒷면은 실들이 엉켜있어 어떤 무늬인지 알 수 조차 없다. 떄로 우리는 실타래처럼 엉켜져 있는 우리에게 일어난 다양한 종류의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 그 일 자체로 실망하고 좌절하고 낙담하여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해 질문하고 또 불신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엉크러진 내 삶을 통해 하나님은 걸작품을 만드시고 계신지도 모른다. 그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와 동행하시고 말씀하시며 우리가 인생을 지나면서 격는 모든 것들을 통해서 우리 내면에 깍을 것들은 깍으시고 부술 것들은 부수시고 고칠 것은 고쳐 말씀에 합당한 모습으로 우리를 빚어가신다. 아름다운 그리..

견고한 마음을 깨뜨리는 내 삶의 고난들

나귀의 고집-이솝우화 어떤 사람이 고집 이 무척 센 나귀를 데리고 산 길을 지나가고 있었다. 얼마쯤 가다가 이 나귀가 곧은 길에서 벗어나 낭떠러지 쪽으로 가려고 했다. 안심하고 느긋하게 뒤따르던 나귀 주인은 순간 큰일났다 싶어서 얼른 나귀의 꼬리를 잡았다.나귀를 끌어 올리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귀는 도로 올라오려고 하지 않고 자꾸만 낭떠러지 쪽으로 발을 내딛는 것이다. 한참 동안 당기고 내 빼려는 씨름을 계속했다. 그러다가 잡고 있던 꼬리를 놓아 버리고 말았다. 결국 나귀는 낭떠러지에 떨어져 다리를 부러뜨렸다. 넘치는 찻잔 어떤 사람이 고민이 많았다.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마침내 그는 유명한 수도사를 찾아가서 고민을 얘기하였다. 그런데 끝없이 자기 얘기만 하는 것이었다. 한시간 두시간을 들어도 ..

환란의 떡과 고생의 물 가운데 주님의 음성

지혜로운 부모라면 아이들이 넘어지거나 실수하였을 때에 당장 달려가 그 일을 다 처리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아이가 스스로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옆에서 응원하여 아이가 그 넘어짐과 실수를 통해 배우고 스스로 극복하는 법을 배우며 성장하기를 도울 것이다. 양육의 최종적 목적이 건강한 독립에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도 우리를 자녀와 같이 양육하신다. 주님도 그분의 궁극적인 목적은 말씀에 대한 순종을 통하여 주님과 같은 모습이 우리 안에 세워지기를 원하신다. 말씀의 원칙으로 단련된 건강하고 구별된 성도로서 세워지기를 원하시지 한 없이 어린 아이처럼 의존된 유약한 믿음의 어린아이 상태로 머물러 있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우리는 종종 우리의 많은 실수로 결과되어진 나의 삶의 처참한 상태 속에서 주님을 찾아와 요술램프의..

New me, New Year, New beginning

아이들과 함께 그림그리기를 하기위해 종이를 나누어주면 여지없이 몇몇 학생들은 다시 내게로 찾아와 꼭 하는 말이있다 . “선생님! 종이 다시 주시면 안되요?” 우리도 걸어온 우리 인생의 걸음을 후회하거나 지우고 싶거나또는 엉망징창이어서 어디서 다시 풀어야 할지 모를 때에 새 도화지를 받듯이 우리가 걸어온 시간들을 지우고 싶을 때가 있다. 당신에게 새로운 인생이라는 도화지가 오늘 주어진다면 당신은 무엇부터 시작할 것인가? 다시 걸어간다면 제대로 잘 걸어갈 수 있는 확신이 있는가? 놀라운 기적에, 기적을 경험하고 출애굽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음으로 언약의 백성이 되었다.그들은 광야에서 그 말씀에 순종하는 새로운 삶을 훈련 받으면서도 끊임없이 믿음의 테스트에서 떨어져 출애굽 한 세대..

마지막 번데기를 찢고 나오며

번데기의 단단한 껍질은 애벌레가 나비로 변화하고 있는 신비로운 과정 중에 있을 때에 나비로 변화하고 있는 그 애벌레를 보호해 준다. 그러나 그 변화가 다 완성되었을 때에 그 껍질은 벗겨져 나갈것이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그 찬란하고 아름다우 자태가 번데기를 뚫고 나올 것이다. 우리는 우리 속에서 무르익어가고 있는 그 생명력을 바라보아야 하고 견고하고 단단한 우리의 옛껍질과 같은 성품들을 바라보며 죄책감과 후회와 절망과 정죄감에 휘말리지 말아야 한다. 왜 벗겨져 나가지 않을까? 왜 나는 여전히 바뀌지 않는가? 고민하는 것보다 내 속에서 여전히 일하고 계시고 나를 빚어가시는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에 더 집중해야 한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올 한해 친히 우리 안에 말씀을 심으시고 그 말씀에 우리의 믿음을 더하여..

예상치 못한 장소 -주님을 만나는 곳

깊은 슬픔이 엄습해서 마음에 평강이 깨지고 잔잔한 파장이 일기 시작할 때 그래서 주님의 위로가 필요한 때가 당신에게 찾아온다면 그 크기만큼의 위로가 필요한 사람에게로 찾아가라 조용히 그 사람에게 귀 기울이고 그의 슬픔을 당신의 슬픔을 통하여 공감하며 잠잠히 기다리면 당신의 마음에서는 절대로 흘러갈 수 없는 무언가가 그에게로 흘러가 그의 마음을 만질 때 즈음에 당신의 슬픔이 이미 사라져 있음을 느낄 것이다. 사랑은 우리를 주님이 계신 곳으로 인도한다. 그 사랑의 음성을 따라 순종의 걸음을 걸어 내 안에 없는 분량의 사랑이 요구되어지는 그 낮은 곳에 설 때에 내 한계를 넘어선 분량의 사랑이 나를 통과하며 흐르며 새로운 차원의 그리스도의 형상이 내 안에 완성된다. 마음이 낮은 곳을 향해 흐르게 하라 주님은 높..

대림절 4주-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 순종의 분량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주님 주님은 우리의 마음의 중심을 측량할 수 있는 정확한 저울이 있으신 것 같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헌금함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또 어떤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눅21:1-4) 주님은 과부가 낸 돈의 크기를 보신 것이 아니라 그 돈에 담긴 과부의 마음의 질량을 재어보신 것 같다 . 그 과부의 마음의 크기가 그가 드린 돈 안에 담겨져 있었다. 마음과 물질은 연결되어 있고, 보이지 않는 것은 보여지는 것을 통해 증명된다. 누구에게는 아주 큰..

대림절 3주 / 우리의 전부를 태우며 주님을 기다립니다.

대림절 3주를 주일을 맞이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안에 어떠한 모습으로 우리를 입고 나타나실까요? 주님을 맞이한다는 것은 벗겨져 나가야 할 옛자아의 습성이 벗겨져 나가면서 그분이 우리의 육을 입으시고 드러나실 때에 우리가 우리 안에서 새로운 그 분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속한 것들 이기적인 자아의 습성들을 십자가에 못박으며 걸어온 한 해의 믿음의 여정 그 끝에서 우리는 순종을 통하여 영원한 말씀으로 지어져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드러나시는 그 분을 맞이하고 연합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공동체와 교회는 어떤 모습으로 주님의 형상을 드러내게 될까요? 우리의 태의 열매의 자녀들의 삶 속에 주님은 어떤 모습으로 오실까요? 매년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찾아오시는 주님을 기다립니다. 순종의 발걸음을 끝까지 걸어가..